한국해외봉사단귀국모임 KOVA40년을 바라보며
코바 회원간에 신뢰와 보다나은 나와 지역 그리고 나라의 국익에 도움이 되었으면
26.02.28 03:13l박향선(na4am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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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예전에2000년대 초다 한국영농신문에 다닐때 일주일에 한 번씩 각기업대표나 협회 회장 인터뷰을 했다.
그러다 신젠타종묘회사회장도 인터뷰을 했다.신젠타는 다국적기업으로 스위스회사였다.한데 인터뷰하면서 어떤것을 적어야할지 난감했다.
회장이 말하는 영어와 신젠타직원이 통역해서 말하는 것이 좀 달라서 말이다.
우리나라 일정시대에 일본인보다 순사가 더 무섭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회장인터뷰가 끝나고 인터뷰글을 썼다.
한데 한국영농신문 주필이 어떤 기사을 추적해서 써 달라는 것이다.약간 안좋은 내용이었는데 방송에서 주필이 들었다는 것이다.
내가 신젠타에 왔다갔다 하자 그때 그곳에서 일하던 한국청년해외봉사단 동기 최필곤이 어느 날은 회의실에 나와서 술 한잔 하자고 나왔다.
나는 술을 잘마시지도 않는다.말도 나에게 못했었다. 내가 술 안마시는 것을 알터인데... 모임에서 술을 거의 안마셨다.
그리고 나는 동기가 영어도 잘하고 외국에도 파견됐으면 하고 기사도 안썼고 다른 기사을 준비하다 회사에서 잘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인가 코바체육대회을 한다며 연락이 왔다. 난 자동차도 없고 경기도 이천 유네스코 연수원은 대전에서 가는 교통편이 안좋아서 안가려다 자기네가교통편을 알아서 해준다고 오라고 했다.
한데 대전에서 경기도 이천에서 가서 전화하니 이병연이었나 최필곤차을 연결해 주었다.최필곤은 별로 인사도 안하고 그아내와 인사을 했다. 딸들과 같이 가족동반이었던 것이다.
그차을 타고 경기도 이천 유네스코연수원에 들어갔다. 다른 선후배가 있는 운동장에 말이다. 그리고 부탄unv갔다온 후 분위기가 코바에서 싸해서 공개행사 아니면 안갔었다.체육대회에서 이병연이 자기 와이프을 소개해주어서 고마웠다.
난 동기들이 다 잘되기을 바란다.
내가 이강오가 un에서 경고받았었다는 사실도 이야기을 안했다.그덕에 서울어린이대공원 원장도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좀 이야기가 그렇다.꼭 큰여자 작은여자 데라고 경기도 유네스코 연수원에 등장하는 모습이었다.
부탄 unv로 나가기전에 코바역사도 잘못기록되어있다.그 당시 정기총회에서 2기에 노모씨가 회장으로 당선이 되었는데 나타나지을 않았고 3기 김미행씨가 어느날 만나서 임원진구성을 나와하게 되었다.
이병연씨을 그때 임원진구성에 넣은 것은 내 대학친구 남편에 친구에 친구에고향친구여서다.
한데 문제는 서울강남역에 커피값이 참 비싸서 이병연자취집에서 코바 봉사단 일을 그때는 열심히 했다. 한 경북대 아저씨가 자꾸 최필곤과 나와 엮으려하니 처음에는 그런가 생각했으나 키가작다. 내스타일이 아니고 같이 일해도 돈을 쓰는 적이 없었다. 이병연씨가 돈을 써서 미안했다.
그리고 다 지난 일이지만 몽골을 다녀온 동기가 갑자기 아저씨가 부산에 집도 있고 어머니 한분인데 결혼상대자로 어떠냐 이야기해서 싫다고 했었다.그 사람이 나을 최필곤과엮을려고 해서 나중에는 다른 동기여자들을 데리고 다녔었다.
그런데 그때 최필곤이 이상한소리을 했다. 전라도 해남으로 출장을 다녀왔다고 나에게 할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환갑잔치을 했다.내가 부탄으로 떠나가기전에 ...
코바에서는 아무도 안왔었다.1996년가을이다.내 대학써클동기가 대표로 와서는 자동차키을 돌리며 잠시 왔다갔다. 대학동기도...내가 연락을 안해서...
그리고 이상한 것은 내가 부산에 가서 애을 낳고 대전에 와서 사는데 애가 5살 무렵부터 코바4기 모임이 최필곤농장에서 있다고 오라는데 안갔다.진천에서 농장을 한다는 것이다.다른 파푸아뉴기니 아저씨가 연락이 왔다.
다만 나는 코바임원을 하고 코바4기을 이끌다시피하다보니 매년 새해인사.추석인사을 문자로 했다.
이번에 동기언니는 왜 연락을 하냐고 오히려 내가 이상하다고 이야기을 해서 놀랬다.
사회생활을 해도 서로 안부을 전하고 코바는 외국봉사단을 갖다온 사람들로써 코바모임에 나오라하고 나중에는 코바이사장까지 대전에 내려와서 일을 도와달라는데...
이번에 한 번 방글라후배에게도 가니 코바가 도대체 뭐냐고 가던 길 가라고 한다.
난 나설 형편은 못대지만 미래와 국가협력이라는 민간차원에서 이루어져야할 미래을 차마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다.
난 부탄unv시절에 카운터파트너가 나에게 안좋게 대했다.나중에 알고보니 카운터파트너가 뉴질랜드에 놀러갔다가 슈퍼마켙에서 한국인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것이다.
뉴질랜드로 이민가는 한국인들은 한국에서는 배운 지식인이거나 투자이민리라면돈이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부탄에서 있었던 일때문에 외국인근로자 무료진료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서울 혜화동 동성중고등학교 라파엘크리닉에서 이주일에 한번.대전에서는 한국어봉사자. 대전외국인근로자무료진료소을 대화동두리예식장 뒤에 한교회에서 윤전도사에게 인터넷으로 라파엘크리닉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세월이 흘러서 결혼이주민여성들자원봉사자.난 반가워서 외국인근로복지관도 자원봉사자에 지원했다가 거절 당했다.
대화동교회에서 외국인근로자무료진료소을 만들었을때 나는 코바충청지부을 만들어 이들과 같이 일하고자 했다.
서울에 혜화동에 동성중고등학교에도 제3세계언어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했었고 시험기간이 되면 자원봉사학생들이 안나와 상황이 안좋았다.
난 대전외국인무료진료소에서 한국코바회원들이 같이 했으면 했다.
그리고 대전역 앞에 국제교류센타에 가보니 평일에도 자리가 텅텅비고 주말에만 모임이 있다해 이곳을 모임장소로 할려고 하고 이곳의 컴퓨터로 충청지부에 300명연락처에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이 국제교류센타는 지금은 신안과의원 앞으로 이사해 대전외국인이주민센타로 명칭이 바뀌었다.
대전인터넷신문에 국제교류센타 보도자료을 계속 올렸다. 한국어. 배트남어.일본어강좌가 있어서 가고 싶었는데 저녁이라 못갔다. 지금 그쪽 지역이 좀 외져 어두컴컴하다.
이번에 친구을 익산으로 만나러 가면서 외국인에게 한국어을 무료로 가르칠수 있냐고 묻고 싶었는데 입을 떼지 못했다. 익산에서 서대전역이나 유성터미널까지 교통비도 무시 못한다.살림하는 사람에게는 십원이 아쉬워 한다.친구들은..이친구는 한국어교육으로 태국과 루마니아을 나갓따왔다. 그리고 굉장히 찬찬하다.
그리고 대전에서 이런저런 일을 도왔는데 출석하지 않는다고 코바4기 모임에서 잘렸다.
나는 동기들과 차을 마시며 이야기을 한 적이 없다. 일때문에 모여서 상의하고 거의 내 아이디어로 다른 사람들이 일을 했다.
그것이 다였다.한데 나중에 모임에 가니 이상한 이야기가 오고 가는듯했다.
그리고 부산에 내가 내려가면서 코바가 정기총회을 하던 것을 대의원체제로 바꾸고 회장에서 이사장체제로 인도네시아 5기인가6기 목사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나중에 몇년전엔도 코바이사장이 대전에 내려와 법인을 만들라는데 정관에 의해서 움직여야되지 않은가.10여년전에 새로남교회 꼭대기 층 커피숍에서 캄보디아 다녀온 후배님이 정관이 바뀌었다고 해서 내민 정관을 보려고 했더니 다시가져가 정관을 보지 못했다.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기초지식이 있어야한다.세무.회계등 말이다.권준희선배에 따르면 koica코디네이터 교육시에도 코이카에서 여러가지을 교육 받는다 했다.
지방지부을 만들려면 코이카와도 협력이 필요하고 지방정부에 남아도는 빈공간하나을 제공받아야한다.준외교여권으로 제3세계에 다녀온 사람들이다.
국내교육훈련시 다양한 관계와 제3세계국가와 협력의 중요성 자라나는 미래세대와 현 우리지역과의 문제을 다면적으로 볼 사람들도 필요하다.
동기언니는 방글라데시 소요사태. 스리랑카문제. 네팔문제 계속이어질것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지금 코바는 반쪽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어울리는 부류가 서로 달랐었다.
난 양쪽 다 친했었다.나중에 연락이 끊어졌었다.
김미행언니가 오래동안 연락이 없다가2024년 가을에 전화해 보험회사 다닌다며 주민번호을 물어 가르쳐주었는데 그후 연락이 없다.
kova선후배가 돈을 모아서 사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나에게는 이야기도 없었다.
김미행언니가 다니던 한미약품과 최필곤이 다니던 서울종묘는 바로 뒷건물이었다.
그리고 한국해외봉사단에는 화교및 다문화인도 있다. 내가 침묵한 이유중에 하나는 봉사단 초창기 적당한 사람들이 없어 koica친인척들이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일하고 남이 공을 취한다면.
우리 동기가 임원들이 되어 일할 때 회장은 얼굴을 안보여지만 부회장은 윤장용선배와 동기 김건도였다.
코바4기 모임도 김건도와도 이야기가 되어야한다.
최필곤 내가 기획부장으로 뽑았었다.
코바40주년위해
언젠가는 스위스친구을 만나고 싶었는데...
산을 오르면 좌절도 하지만 그래도 꼭대기는 위에 있기에...
서로간의 신뢰가 형성되어야 서로 이끌어 줄수가 있습니다. 사업이 다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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