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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소통방

한국해외봉사단 갔다온 분들 주위에 문제가 없지는 신변보호 가 필요한것은 아닌지

  • 작성자 : 박 **
  • 조회수 : 41
  • 작성일 : 2025-02-13

예전에 비해서 사람들이 안모이는 이유...난 딸이 괴산에 구봉계곡에 보냇는데



예전에 비해서 사람들이 안모이는 이유...난 딸이 괴산에 구봉계곡에 보냇는데은 쓴국민은행에서 월요일에딸 현희영국민은행통장을 만들었다.그 앞에앉은여자가 어디서 낯이 익었다.

딸 통장과 현금카드를만드는데생명보험이 전자패드에보여서 입출금통장과 카드만 만든다고했다.보험은 안한다고했다
그은행원이미지가 내 페이스북에 올린사진과 비슷하다.그여자는 카트머리에 정장을 입고 행원으로 국민은행에 앉아서 일했다

목원대 근처 용계동 kcc에테르 스위첸에서 스템프가 없어서 박지만팀장스템프와 그곳에서 일하던 고뭐라고 하는 여자와 같이일했는데 그여자와 황뭐라고 하는 남자도 같이 일했다. 그여자이름이 찍힌 고씨인데 물티슈와 홍보지를 겔러리아백화점과 그 주위, 목원대,여러군데 뿌렸다.그리고& #39;내가 페이스북에도 kcc에테르스위첸에 대해서 올린다고 현장사진을 달라고하고서 보니 제주도와청주분양건이 올라오고 현대도안리버파크도 올라왔다.
고씨라는 여자는 엘지현장식당에서도 일하고 강남에산다고 했는데 내가 스티커를 사용해서부친다고 하고내가 kcc에테르스위첸에 대해서 컴퓨터검색을 한다고 하자 천원을주기도했다. 국민은행에앉아있다가 대흥동사거리 롯데캐슬 분양팀으로옮겨서 호반건설인가 엠지예인가뭔가에 등록을했다. 난 안했다. 내가 일했던 문창동 에코토피아그라시아아트빌주변, 대흥도오토바이원동,국보,주변원동까지 kcc에테르스위첸용문역홍보지를 뿌리고 다녔다.

부탄에서 사람들이 그나라 아쉬즉공주인데 왕족과 비슷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난 부탄에 내 가족사진을 큰것을가져갔었다.아버지환갑사진으로 타블로이드만한게 찍은것이었는데 없어졌다.
하나은행계좌직원이& #39;십여년전에 주택청약저축을 하라여 프리미엄이 삼사천만원된다고 얘기했는데 딸학원비에 태권도체험학습비등에& #39;쓰느라하나은행주택청약저축을 여러번깨고 마지막에는 몇번넣다가 말았는데 통장이 없어진듯하고 잊고지냈다.
어느산부인과조리장이 내 임금을농협말고 하나은행계좌를 달라고하고 해서 은행에갔다가 통장지점이 황실로찍혀서놀랬다.통장재발급이유는 인감분실이다.
Kcc에테르분양팀출근이 좀늦는듯했다. 출근해서 걸어가면서보면 도안현대리버파크모델하우스는 정장차림의 이십대여자가 일찍 사무실을들어가는& #39;것을 보고 나중에는아줌마들이 그 앞을 청소하고있었다
내가 페이스북으로 kcc에테르스위첸모델하우스 방문을 월요일인가 시간을 정해 해달라고띄웠다. 한데 에테르스위첸 박지만팀장이 그날 나오지말라고했다. 자기가 부를때까지그러다 일주일인가 이주일후에 대흥사거리 분양사무실로나오라해서나가니분양팀셋업이었다. 롯데팀이고본부장도 바뀌었다. 아니잘생각이
Kcc에테르스위첸분양팀대표는젊은데 그때오십호가 남았다고했다.

난 11월에서 12월 초 KCC에테르스위첸에서 그대로페이스북에 새벽마다 일어나 대전을 홍보글를 영어로올리고롯데는 태평동 유등천변가로들어선다고했지만 부모님계원들도 사실텐데 그분들을 내칠수가 없다고 생각해서롯데캐슬가오동분양은 안하겠다고했다.
에코토피아에서 그라시아아트빌분양피피티을 만들어서 방문했던부동산명단을 안넘겼다
은행동대흥동중앙시장.원동. 부사동,문창동지역을 카바한다.황실부동산자리인가에 롯데캐슬 모델하우스가 생겼다.
박지만팀장은 무슨 말인지 기다리라고 하면서 공사현장방문후 무슨말을하니
?
고소해볼톄면하라는식이었다.

그들은 강원도에서 분양하다온 팀이라고했고 유성에 홍보하다보니 십이년년전에 분양하던곳의 분양팀이 생각이 났다. 울산인가에서 오고 한 남자는 울산경제연구원에서 일을했다며 목동에 샵아파트에서 부동산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로 분양일을 한다는 이현주라는 여자와나중에 같이 다녔다.세명이서 다녔는데 그 남자분은 나중에그공인중개사와 둘이 다녔다.
그 kcc에테르스위첸옆에 샵아파트인가 분양모델하우스가100%분양으로닫혀있었다.
그 이현주공인중개사딸이 미대를준비하고 남편이 목동아파트부동산사무실을 지킨다고했다. 한동안은 카톡으로 연락을 했었다.
Kcc에테르스위첸모델하우스를 보니 텐엔텐부동산안내전화번호가 있었다
텐엔텐은 다음카폐에부산지역사람들에 십억만들기모임으로 부동산등에대해서 공부한다.
국민은행그 행원을 다시가서 이름을 확인하고 계좌에 대해서 알아보고 내딸앞으로문제를 알아봐야겠다
이년전인가삼년전인가 딸이우리은행현금카드를잊어버렸다고 했다.
지난해 팔월에는 좀 이상했다. 외국인말투를 흉내내고 팔에 빨간점이 생기고 삼사십대아저씨가좋다고해서 영화를보고 강동원이 좋다고해서 그러려니했다
요새는 이십대 싱어가 좋다고한다.권지용이좋다고 노래를 듣다가 요새는 엠지엠인가 이상하게 노래를 듣는 것이 좀 달라졌다.
공부하면서 잔잔한 음악을 주로 들었는데 말이다
부산에 딸의 할머니인 최원자 도 상당히 피부가 깨끗하고 하얗다. 내가 부산에서 내려가서 처음에세명이서 같은방에서 자고 있다고 쿄바동기언니에게 이야기했더니그시어머니 미친여자아니냐고전화로 화를 냈다.
부산내려가기전에 어머니가 삼성카드빛을갚는다고& #39;나보고알리앙즈에서 약관대출을받아달라고해서 약관대출을 받아서 농협통장을 대전일보옆에 대흥동농협에가서돈을 어머니에거 주고그때 신분증을 그은행에서 안가지고 왔었던것 같다.
그은행에건물이다시지어지고 대전일보는 월평동 중도일보가예전에있던 빌딩으로 이사가고 중도일보는 현재 서대전사거리로 이사왔다. 원래는 성모병원근처에 있었다.
대전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려고 교차로에서 일자리을 구했다.대청불교신문이 나서 찾아가니 사무실도 없이 인쇄소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하란다. 너무 기가 막혀서 안하려고하는데 점심을 시켜주는데 칼국수에 고추가루가 잔뜩 끼어 있었다. 어머니가 집에서 뻐을 고운 국수을 해주거나 칼국수을 해주는데 고추가루을 안넣는다.
어느 앉아서 일할 자리도 없고 그러더니 공주에 어느 계룡산자리에 큰절을 가잔다. 취재을 하러. 아침일찍 나오라고 해서 갔다. 주지스님은 인터뷰도중에 일어났다. 인터뷰을 안하셨다. 그전에 어디을 갔냐면 대전일보을 임향순사장이 같이 갔다. 대전일보기자는을 일층에서 만났는데 그사람은 앉아서 보도자료을 받았다는 것이다. 두툼하게 .우리는 공주 갑사까지 갔다. 스님은 \나보고 어디에서 일을 햇냐고 물었다.작은 지역지에서 일한경력만 이야기 하고 국제 협력단 봉사나 UNV일은 이야기 한했다.스님은 그자리에서 일어났고 선방에서 나와 인터뷰글을 쓸 수가 없었다.난 생 처음이었다. 인터뷰을 하면서 올내동안 기다려서 인터뷰하기도하고 글을다 써놓은 것을 인쇄을 못하기도하고 그자리에서 꼼짝도 안하고 저녁무렵에서야 인터뷰을 따기도 한직다. 한데 인터뷰도중에 내가 작은 신문사 에서 일한다고 벌썾 일어나서야 되겠는가?
절 사무실에 오니 임향순씨고 누군가 서글한 사람과 이야기을 하고 있엇다.임향순씨인가 사무실에서 얼마간의 돈을 받았다고 햇는데 나애게는 교통비도 안주었다.
책상을 마련해준다고하더니 안그렇고어디서 일을 하란말인가?그리고 갑자기 토요일날 환경운동연합에서 토요일 오후에 행사가 동학사에서 있으니 갔다오란다.그여자는 좋은 글보다 그전에 절신문인가 뭔가을 햇는데 절에서 돈을 받으면 신문을 한호씩 만들수있다고 했다. 편집께획도 없이 무계획으로 신문을 만든다는 것이다..
난 그때 몸이 안좋아서 안간다고햇다. 대전 중부경찰서 .. 중구청 앞에 있었다. 한 십일을 나갔다는데 주간지는 신문이 나오는 금요일이나 토요일은 쉰다. 간혹 취재을 가기도 하지만. 대전은 이상하게 신문사 사장들이 기자들에게 대우을 안해준다.우월급도 없이 일을 시키러 하고 촌지을 받아서 생활하라고 한다.여성신문에 이경우대전지사장은.신문사에 가만히 앉아서 있으면 교통비가 안든다.난 조그마한 사무식직원들이 사무실에 앉아서 자격증 공부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해서공직에 전문기사 자격증을 갖고 활동하는것을 안다. 조그만한 사무실에는 일이 별로없다. 협회도 마찬가지다.그래서 인지 지금은 조그마한사무실에서 시간제 알바을 쓴다.옛날에는 종일직이다. 그래서 난 전문기사자격증있다는 사람들, 공무원들, 일하면서 공부햇다는 것 웃는다. 사무실에서 사무실 지키고 책보머 점심먹고 자기 일을 하다거 집에 간다. 영업직원 오후늦게 오면 이야기 하고저녁에 회식자리 같이 가서 웃고 떧들고.
기자들은 돈이 되건 안되건 바쁘다.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한다.서울은 작은 메체도 대기업에서 보도자료을 건네주고 열심히 기사을 써주면 작은 광고라고 광고 파트에 넘겨준다.
대흥동농협에는 신협이 옆에 있고태전마트가 있었다
부산에서 애아빠는 어머니가 마트직원과결혼하라고 했다고 울상이었다.
부동산분양업자도 화장품영업자와같이 사업자등록증을내고 책임분양영업을해야한다. 작은가게들은 구독을 하나라도 해준다.백화점도 호텔도 한데 문제는 있다.보도자료을 쓰기위해 전화을 해야 한다.롯데백화점에 홍보실 담당자는 얼굴도 본적이 없다.하지만 개인의 안부도 묻고 간단한 인사도하고 친해졋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장례식에 가보는 것인데 못갔다.한국청년해외봉사단교육시에 휘지와 PNG가 롯데쇼핑몰을 간다고 해서 롯데 백화점에 전화을 해서 할인권을 받아주기도 했다. 잘 생각이 안난다. 만나서 안내을 한다고 했던가?
대전은 백화점들이 작은 매체는 보도자료을 안주려 한다. 인머뷰기사도 홍보실 통해서 소개올 하면 백화점 홍보 및 브랜드소개도 계절별로 광고을 주기도한다.서울인건 대전이건 내 이력서을 많이 뿌렸는데 혹시 그중에 사칭한 사람이 있나요 걱정되고 강남신문이란느 곳에서 어려운환경에서도경력을 쌓는데 버스에서 가방이 찢어졋다, 사가 아시아태평양대표 을 남산하얏트호텔에서 룸에서 인터뷰하는데 끝나니 명함지갑을 주어서 내 명함을 잔뜩 넣어서 만나는 사람을 주고 인사을 햇다,. 한데 버스에서 출근하면서 가방이 칼도 찢기고 사가 가죽명함집이 없어졋다. 무서워서 빨리 이직을 햇다. 강남신문은 처음에는 월급을 한달 보름뒤에 주다가 제날짜에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꾸 미루어서 주었다. 지방에서 올라가 집세 내고 취재하면서 택시도 타야 하는데 강남은 건물이 있기는 해도 추웠다. 크리스마스날 조선일보 전단지을 보고 강남여성인터부을 잡았다. 각지역회장들 인터뷰가 쉽지 않아서주간지는 요일을 산다. 그날이 크리스마스인지 몰랐다. 차비도 없는데 진짜 촌지라도 생각을 햇다. 강남의 지하인가 사업을 시작해서 홍보하는 지라 그여사장도 난로을 피우고있었는데 약간은 추운것 같았다. 아들이 같이 나왔다. 인터뷰을 끝냐고 집에 오는데 동전이 쟁그랑 거렷다. 강남은 교회들은 큰데 평상시에는 굳게 닫혀있다.
관악지역으로 갔는데 걸어다니면 절에 가서는 스님과 차을 마시고 원불교 교당에 가서는 잠시 피굔한 다리을 쉬며 눕기도 햇다 ,교회는 열려 있어서 합창연습을 하며
화기애애하다.그런데 문제는 신문사 사장이 개인사업이 처음이라서 외상을 못햇나보다 .신문을 재대로 발행하다가 인쇄을 못했다. 강남신문은 월급을 다 못주는데도
신문은 제날짜에 찍어서 배포을 하는데 배포하는 알바생들에게는 알바비을 주는 듯햇다. 춥고 배고픈 겨울에 신문사 컴\퓨터가 고장나서 충남대 써클선배을 불러서 교칠 정도 엿다. 젊어서 꿈이 있엇다. 그때는 내가 바빠서 가지 못하고 다들 강남신문 학동사거리 근처로 와서 친구들과 이야기 을 하고 차한잔 마시 고 보내던 시절이이다.관악문화신문사 사장은 일간지로 청와대 기자 출신으로 비행기타고 다니고 자신이 기자 생활할때는 회사에 아침에 토큰 두개을 주고 나가라고 해면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회사에 들어갔다고 추억을 많이 이야기 해 주시고 나보고 아침에 일찍 나가라고 해서 아홉시까지 출근해서 열시정도에 나가서 관악지역을 돌아다니다가 오후네시무렵에 들어갔다. 다리가 아프면 은행에 간다. 식당은 그렇고 레스토랑세 가서 앉아있다가계모임하는 사모님 을 만나기도 했다..그런데 저녁에 사장님이 글을 만년필로 다듬어 주고 스트레이트 기사쓰는 법을 이야기 하는데 자꾸 뒤에서 문이 달그락거리는 것이다. 인기척이 나고 그래서 생각했다 ,.사모님이 어린여자와 같이 있으니 의심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참 좋앗다. 광고하는 사람도 기자들도 잘 지냈다. 다 보고 싶다. 한명의 서울의 어느 대학생회장 출신으로 데모을 많이 해서 검정줄이 가서 취직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당시에 학생\운동하던 사람들이 작은 출판사나 지역지 , 월간지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강남신문에서는 조선대 학생회장이 잠시 일하다가 갔다. 아니면 고시공부하는 사람이나 고시을 공부하다가 \애기가 생겨서 고시공부을 하면서 주간지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그러다 보니 법에 대해서 많이 귀동냥도 햇다.
그러나 \한국해외봉사단 다녀와서 판도가 바뀌어 있었다. 다들 자가용을 끌고 다니고 컴퓨터로 원고을 작성하기시작하고 있었다. 기자도 하려면 돈이 든다. 그전에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바쁘면 택시다.
그런데 어디에서 내 이력서가 셌을까 수도 없이 대전과 서울에 뿌려서,,..
의회타임즈에서는 일과을 끝날무렵 다른 기자들과 사무실에서 통닭인가 족발을 먹기도 했다..어떤사람은 지역에 보좌관인가 어디로 간다고 햇고 중국에 대해서 글을 써서 그때 중국에 대해 가볼까 생각도 햇다.
그래서 부탄을 다녀온후에 대전에 살면서 교차로에 제세산업에서 중국에 파견된 직원을 뽑는다고 해서 지원햇는데 중국비자도 받았지만 술을 못마셔서 잘렸다. 중남미 영상무역상담을 앞두고 ...
그 여권을 부산다녀와 친구랑 베트남 식당에서 쌀국수을 먹고 잊어버렸다.
방글라데시에 파견나갈때 국제협력단에서 비자을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내이름을 적어 냇는데 y을뺐다. 내가 대학졸업하고 일본에 갈려고 대전 일보 앞에 유학원에서 여권을 만들때는 y을 넣엇다. 난 지역지에 서 일이많아서 일본에 못간다고 햇고 그때 집을 떠날 형편이 아니었다.
방글라는 해외봉사단다녀온분을인터뷰을 갔다가 지원서을 받아서 썻다.마감이 끝나서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대전에 내려와 누워계신아버지앞에서 어머니는 자신이 젊었으면 내가 나간다고 지원허락서에 사인을 해주셧다.작은 어머니는 강원도에 피스코 평화봉사단에 대해서 이야기을 해주시고 ..

어디서 잘못된것일까 수십번도 생각한다.
산후조리원을 25년전에 어머니에게 같이 하자고 햇는데 어머니가 두려워 햐셨다. 돈을 대출받으면 어떻게 갚느냐고 겁을 먹었다. 그러다 가끔씩 교차로을 보고 산후조리원이나 산부인과 산모 조리실 전화을 해서 구인을 묻고햇다.그러다 지난해에 산부인과에 산모영양식 만드는 곳을 갔다가 임금을 받으러고 하는데 통장문제로 시작해서 계속연속적으로 일이 터지고 있다.

그리고 딸의 신변과 어머니의 신변이 걱정된다. 어머니도 금성빌라에 옮기시면서 신호을 했는데 내가딸을 보고 식당에 나가면서 너무 몸이 힘들었다.

내가 대전시청앞에서 국민은행통장을개설했었던것은 토지분양해서 출근하니 만들라고해서 만든것같은데 모바일상에서 내주민증을 넣으니 팽창선52년일월생이라고 떴었고
십이월초에 내신분증이 없어져서 다시& #39;주민증사진을 찍으러가니 어떤여자가 자기는 십년째카트머리라는 것이다.나는 머리를 길렀다가 단발이나 카트를 이삼년주기로하는데 이번에 시월인가긴머리를 자르려고하니 딸이 못자르게 해서 머리가길다.여권사진을찍을것이냐 꼬치꼬치 사진관에서여자가 물었다. 나는 나중에 만든다고했다.집에는 화장대에 딸이 자기친구그린 사진을 올려두고 있어서 내가치웠나?그애엄마가노동청에 다니고 몇년전에 이혼했다고한다.위에언니와 오빠가 있고 & #39;
부산으로대학을 간다고했고 딸이 한번내려갈것이라고했다.경상대
부산에서 308호할머니의 며느리가 노동부에서 일하는데 서울에산다고하고 아파트에서 두세살손자를 돌봐주고 있다고했다
어느날 젊은 남자가 후다닥 얼굴이 빨개져서가방을들고나왔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내사진은 몇년전 사진이다.긴머리에 난그후 부동산분양세입자관리,인텨넷신문에 글을 올리고 식당에다니다가 도서관 개선책을국회.시의회올렸다가 농산물판매 여름에 길거리에서 수박을 팔았다.kbs는 북유럽에 도서관평생학습에대해소개하고.
모두연관이 있는것 같다.내가 여권을여러번 잊어버려서.

그리고 부산에서 내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하니 애를 주고 오란다.난 애를 데리고 다녔다.한번은육개월되서 애기를 잘 안보던 애 할머니가 빼서서 나갔다. 들어오지를 않았다. 난 어찌할지& #39;몰라 글을 컴퓨터에 썼다. 모라피시방에서있다가 해운대가서 찜질방에 누웠다잠깐 일어나서 바닷가를 걷다가 대전으로 올라올라왔다.그후에 미칠것만같아서 그리고그때애기낳느라 이빨을 해야하나해서 알리앙즈에전화하니이빨이된다고했다. 한데 사무소에가니 이빨은 해당이 안된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산에가서 희영이를데려왔다.
부산에서 모라동 가까운 지하철근처에서안경을 했다.좀 이상해서,
그리고 애를 낳고 대전에 와서 안경도 잊어버리고 그때 또주민증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희영이가얘기했다 엄마내가저쪽 구굴다리집에살때& #39;귀신을봤는지 & #39;엄마가 시장을 간다고 나선는데 엄마가 부엌에서 일하고 있었어했다.

애기가 어렸을때 애아빠와 헤어진다고하자 어머니가 그냥 살라는것이다. 이천만원줄톄니?싫다고했다.그무렵 연락이 안되고제사에오지도 않던 여동생이 대전에 있었고 여동생이 위풍당당해져서제사에 와서이래라저래라 하기시작했다.
그리고 애아빠를 만나서 결혼을전제로 만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않았던 막내남동생을 이야기하며 이래도 나를 만날것인가했는데 괜찮다고 포항 호미곶에서 그랬다.그리고& #39; 막내남동생이 왔다. 그런데 어찌된영문인지 나에게 차게대했다. 부탁한대로나는 혜인이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었는뎨.
나중에 세월이 흐르고보니 엄마가 내가 안한 행동을 했다고& #39;남동생에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또한지난 일이고 내가 잊어버린여권이 어쩌면 일어버린것이 아닐수도 있지아닐까 생각이 든다.
의사선생님이너무나 고맙다
나보고 아프면쉬란다.쉬어가면서 다음에일하란다.
아프다보니카드값이문제긴한데 아파트중도금보다낳고 사업대출을 몇억씩 하는사람보다났다.
그리고대전시청에 가서 여권을 만들기는 하는데 서두를 일같지는 않다. 쥐도도망갈구멍은 만들어주어야하지않을까
,큰 배가 바다에 뜰때 그 배에 쥐가 없으면 그 배는 침몰 한다고& #39;했다.
모두의 안전을위해서 나는 일어나야한다.
남동생이 아버지건설현장을 따라갔다가 산재를 입었다.허리가안좋아 다른& #39;일은못한다.부탄을 갔다오니 올캐가바람이 났다는데도참는다고했다
그올캐는 역도를 했다.냉장고도번쩍.조카들이아버지를챙길지의문이다.
무역회사에 있을때 사장이시청공무원들이다대출이 많다고했다.
나는시청에제안했다 대전시민을 위해 일하는 공무원들이 편안히 일하도록공무원 아파트가 있어야한다고부자들이 공무원하면 누굴위해 일할까,
예전에 복지하면못사는 사람들위주였으나 지금복지는 힘있는자들의 논리다.
빈사업체건물도 많고?
방글라뎨시에서 어떤애를데리고 학교에보내기위해서 돌아다니다가 엔지오를 방문했는뎨 정말혜택받아야할 사람이아니라 엔지오에 아는 사람이 있어야 지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애를 부탁했다.
예전에 흉년이들면서 양반의호폐가거래가되고동네행정복지담당자의 책임감과 사채업자나 금융기관에서 함부로개인정보를 변경하고& #39;하면안된다는생각이다.난 전화를 받으면 잘리기도여러번이다.
공공근로와사기업체이력서를넣는데 사기업체가 먼저와 작은곳이지만일도하고 외교부에 인후보증도 받아 북한과 무역도.할수 있는 서류를 제출했다. 그런데 한달뒤중국심양에 술을 못마신다는이유로 파견안돼고잘렸다.중남미와영상무역상담하루 앞두고 그때여직원이 열두살어린성모여고동문.목원대졸업생으로 작은키에 반팔을겨울에입고 난로앞에 앉아있었다.언니가 카이스트.그때 유천동 필립여행사에서중국비자를 받아준여권을 부산가서 애났고 대전에 와서 센트럴파크에살던대학친구를 베트남식당에서 잊어버렸다

그리고17년됐다

Hyangsunpark
Hangsunpark
& lt;u& gt;lhaya@hanmail.net
nawane
엘지에서도 핸드폰번호를바꾸지는 않을지?

참 내가부탄에서돌아와 부모가 사는집에 옆집에 연화라는무당이 살았다.엄마는새해 무슨일이 있으면 무당이나절을찾는다
교회개척교회는 힘들다고 집에 있는 쌀을 보내기도해서 명절때 목사부인이 찾아오기도 했었다.개척교회에서 조카들이 마음껏 피아노를 치고 놀았다고 한다.